전 세계가 선호하는 고용브랜드, 워라밸
- 임희정 한양사이버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한국 사회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의미하는 ‘워라밸’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며 다양한 세대가 공감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워라밸은 2000년대 초반 자녀 양육의 책임이 있는 남녀근로자의 일과 가족생활을 지원하는 일-가족 양립(Work-Family reconcilia tion) 개념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남성·여성, 미혼·기혼, 청년·노년 등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일’과 ‘삶’에서의 균형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과거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과 출산율 제고, 남성의 육아휴직 확대를 위한 제도 및 지원에 집중했던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유연한 근무 형태, 근로시간 단축, 일·생활 균형 직장문화 창출 등 일하기 좋은 기업의 조건으로써 워라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지난 2년간의 코로나 펜데믹은 사업장의 일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일하기 좋은 기업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 놓았다. 많은 사업장에서 재택 및 원격근무 등의 유연근무제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으며, 유연근무 여부가 청년들의 일하기 좋은 직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8,353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취업하고 싶지 않거나 퇴사의 사유가 될 수도 있는 일자리 특징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분석 결과, 청년들이 가장 기피하는 일자리 조건은 정시근무가 지켜지지 않는 직장(2.94점/4점), 불편한 통근 환경(2.74점/4점), 본인 기대보다 낮은 월급(2.74점/4점), 비정규직(2.68점/4점), 주 5일 근무가 아닌 직장(2.55점/4점)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1년 7월 400만 명이 직장을 그만뒀으며 지난 4월에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몇 달 동안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30세에서 45세 사이의 직원 퇴직률이 가장 크게 증가했으며,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평균 20% 이상 증가한 수치 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The Great Resignation(대량 사직)’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로 경기 불황인 이 시기에 직장인들은 왜 사표를 내는 걸까? 글로벌 채용서비스사인 에이치알캡(HRCap, Inc)의 2021년 7월 조사에 따르면, 퇴사하는 이유로 59%가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50%가 일과 가정의 균형, 하이브리드 근무 선호 등 근무 환경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더욱 높은 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1% 로 돈보다는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무역경제신문, 2022.1.31.). 다시 말해, 직장인들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더 나은 삶, 더 행복 한 삶을 살기 위해 연봉은 많지만 업무 강도가 높은 직장을 버리고 더 만족스러운 근무조건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ghosting(고스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는데, 이는 어렵게 취업문을 통과한 젊은이들이 첫 출근날 얼굴을 비치지 않거나, 어느 날부터 문득 회사에 나오지 않고 연락을 두절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고스팅에 대처하고자 미국 기업들은 채용 시점부터 필요 인력보다 약 10~20%를 추가로 뽑는 ‘오버부킹(overbooking)’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The Great Resignation’과 ‘ghosting’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인 워라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미국 기업 중 27%가 주 4일제를 이미 도입했으며, 2021년 7월에는 민주당 마크 타카노 의원이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에서 총 32시간으로 제한하고, 이 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경우 시간당 근무수당을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 32시간 근무제’ 도입 법안 을 발의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주 4일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유치원 교사, 회사원, 사회복지사, 병원 종사자 등 다양한 직군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하는 국가 차원의 실험을 단행했다. 기존과 같은 임금을 받으며 주 4일만 근무한 것으로,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인구 중 1.3%가 이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 결과 근로자들은 스트레스나 번아웃을 더 적게 호소했고, 기존의 성과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아이슬란드 근로자 86%가 같은 임금으로 더 적은 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근로시간이 비교적 짧은 덴마크와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이미 주 4일제가 법제화되었다. 일본은 2021년 희망 직장인에 한해 선택적 주 4일제 도입을 검토하였고, 스페인은 주 4일제 희망 기업을 향후 3년 동안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부 대기업이나 IT,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특정 업종에서 주 4일제나 주 4.5일제를 실험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 근로시간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들의 수요가 맞물린 것으로 해석된다. 종합교육 기업 에듀윌은 일찌감치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6월부터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 3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으며, 인력 충원을 통해 주 4일제 확립에 나섰다. 주 4일제 시행 전 470명이던 직원은 2021년 780명으로 늘었으며, 매출액도 주 4일제 시행 전 815억 원 에서 시행 후 1,193억 원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직원의 근무 환경 만족도가 상승했으며,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우수 인력이 입사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실제 주 4일제 시행 뒤 업무 포지션별 입사 지원자가 두 배 이상 늘었고, 채용 사이트 접속률도 70% 이상 증가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은 2015년에는 주 37.5시간(주 4.5일제) 근무제, 2017년에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으며, 2022년부터는 주 32시간 근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임금 삭감 없이 주 32시간 근무제로 전환하는 배경에는 근무시간 단축에도 업무 효율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규율 위의 자율이라는 회사의 핵심 가치가 매우 잘 지켜졌기에, 조직 전체에 자율성과 업무 집중도를 높여 워라밸 문화를 구현하기 위해서이다. 카카오게임즈는 2021년 5월부터 격주로 금요일에 쉬는 주 4.5일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인터넷 은행 토스도 매주 금요일 2시에 퇴근하는 주 4.5일제 시행에 나섰다.
그러나, 주 4일제 적용이 제조업이나 중소기업, 저임금 근로자에게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다. IT 기업과 달리 중소 제조업은 주 4일제를 적용 하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연차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휴식권 보장이 먼저일 수 있다. 또한, 낮은 기본급 때문에 초과근무로 임금을 보전받는 저숙련·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실질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과 같이 연차 휴가 사용률이 저조하고 장시간 근로와 경직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는 ‘워케이션(workation)’이 새로운 일하는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식(vacation)의 합성어로 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제도를 말한다.
워케이션은 미국에서 이미 10년 전부터 만들어진 제도로, 2000년 당시 미국의 기업들은 근로자의 유급 휴가 사용률이 낮아 고민이 많았는데 그 대안으로 여름휴가 중 여행지에서 일하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특히, 일본에서 워케이션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하는 방식의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의 오랜 과제로 다루어진 유급 휴가 취득 눈치나 지방창생촉진과 같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일본 국토교통성은 ‘워케이션 및 블레져(Bleisure, 업무와 여가를 겸한 휴가 형태) 등의 활용에 의한 일하는 방식 개혁’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일하는 방식 개혁, 휴가 취득 촉진, 지역에 젊은 인구의 유입에 따른 지방 활성화 등 워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기업과 지자체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kotra해외시장뉴스, 2021), 일본 오카야마현에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104개 기업에서 910명이 성공적으로 워케이션을 경험했고, 일본항공(JAL)은 2017년부터 연간 최대 5일 국내외 어디서든 회사가 지급한 컴퓨터로 담당 업무를 처리하면 정상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워케이션은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장시간 근무, 낮은 휴가 이용률이 문제가 되는 경직된 일본의 근로문화의 해결책으로 평가된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재택근무는 이제 보편화가 되었고 더 나아가 주 4일제 등의 근무시간 단축, 워케이션 등의 하이브리드 근무가 등장하고 있다. 일을 삶의 목적과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고, 평등한 의사소통과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의 근무 환경을 선호하는 MZ세대에게 워라밸은 직업과 직장을 선택할 때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들은 치열한 고용 경쟁 상황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워라밸이라는 고용브랜드(employment brand)를 구축하고 그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
1) ‘한국교육고용패널조사Ⅱ(2020)’ 4차년도 패널조사 자료 중 응답자 8,3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함.
2) Ian Cook(2021), Who is Driving the Great Resignation?, Human Resource Management.
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908시간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 1,687시간에 비해 221시간이 많고, 가장 짧은 근로시간을 기록한 독일(1,332시간)에 비하면 576시간이 많았음.
4) 글로벌 여행사 Expedia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근로자의 연차 휴가 사용률은 2018년 기준 각각 72.5%, 50% 정도로, 영국의 96%, 홍콩과 독일이 100%인데 비해 매우 낮은 수치임.
5)특정 회사가 고용관계와 관련하여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총체적인 이미지를 의미함.
* 필진 소개
- 이화여대대학원 경영학과 석사/박사
- (전)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전)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
- (현)고용노동부·노사발전재단 평가위원
- (현)여성가족부 자문위원
- (현)행정안전부 평가위원
- (현)한국인사관리학회·대한리더십학회 이사
- (현)한양사이버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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